한국 최초의 여왕 선덕여왕
신라의 제27대 왕으로 우리나라 역사 기록 주에 확인되는 최초의 여왕이 선덕여왕입니다. 연호는 인평이며, 진평왕과 마야부인 사이의 딸입니다. 최초의 진골 출신 국왕인 태종 무열왕의 이모 이기도 합니다. 삼국사기에는 여왕의 여자가 빠진 선덕왕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훗날 제37대 군주이자 남성 국왕인 선덕왕 김양상과 혼동을 피하기 위해 여왕이라는 칭호를 섰습니다. 그리고 삼국사기에서는 진평왕의 장녀였다고 전해집니다. 필사본 화랑세기에는 천명공주와 위아래가 바뀌어 차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남편은 삼국유사에서는 음갈문왕으로 기록되어 있고, 화랑세기에서는 추가적으로 김용수, 을제 이렇게 3명의 남자가 선덕여왕의 남편으로 가록 되어있습니다. 다만, 화랑세기는 역사적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즉위과정
신라의 전례를 보면 원래 신라에선 아들이 없거나 있어도 문제가 있으면 딸이 아니라 사위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즉, 진평왕의 사위이자 사촌형인 김용수가 관례대로라면 왕위에 올라야 했으나, 선덕여왕의 아버지인 진평왕은 혈통을 중요시 여기고, 또 한편으로 남성중심이었던 고대 동아시아 환경 또한 특히나 혈통을 중요시하는 신라 사회였기에 여성임에도 성골이라는 이유로 그녀는 왕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시실 진평왕은 꾸준히 아들이 없었기에 자신의 장녀를 일찍이 점찍어놓고서 왕위를 이어준 것이 아닌가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선득 여왕의 즉위이전 공주 시절에 뭘 하고 살았는지에 대해선 딱히 기록이 없기에 알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한 가지 삼국유사에 나오는, 불태워 죽이는 연기를 하던 문희를 선덕여왕이 살려주었던 일화는 이 사건 직후 태어났을 문무왕이 626년생이므로 선덕여왕의 공주신분일 때의 일이었을 것입니다. 선덕여왕이 왕위에 오르기 전년인 진평왕 재위 53년의 5월에 대규모 반란기도가 있었는데. 바로 칠숙·석품의 난입니다. 이 난은 진평왕에게 적발당해 칠숙은 9족을 멸하고 아찬 석품은 백제로 도망가다가 처자식이 그리워 보러 왔다가 들통이나 붙잡혀 처영 당했습니다. 이것이 단순히 진평왕에 대한 반란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사건이 있은 후 진평왕이 곧 세상을 떠난 것을 보았을 때 이미 고령의 진평왕이 몸이 좋지 않았고, 후계자로 선덕여왕이 지목된 상황에서 일어난 반란이므로 여자가 후계자로 지목돼 왕에 오르는 사태에 반발해 일어난 반란으로 추정하는 설이 제기됩니다. 그리고 632년 진평왕이 붕어한 뒤 덕만공주가 보위에 오르니 곧 선덕여왕입니다. 선덕여왕은 아버지인 진평왕이 안정된 왕권을 유산으로 줌으로써 왕권강화 및 안정정책으로 스스로 정치를 잘할 수 있었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정확히 몇 살에 여왕이 되었는지는 기록이 없기에 잘 모르지만 진평왕이 굉장히 오래 재위한 것과 조카인 태종 무열왕이 603년생으로 보아, 이를 역산했을 때 선덕여왕이 왕위에 올랐을 당시 나이는 아마도 40세가 넘은 중년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비담의 난
백제와 고구려는 신라에 대한 압박을 지속적으로 하여 신라는 선덕여왕 시대에 들어 상당한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선덕여왕 말년인 재위 14년이 되자 귀족들의 반발이 더 이상 억누르기 어려울 정도로 극심해지자 선덕여왕은 그해 겨울 11월에 이찬 비담을 상대등으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불과 두 달 뒤인 재위 15년(647) 정월에 비담이 염종 등과 더불어 난을 일으키고, 이때 내놓은 명분이 바로 '여주불능선리', 즉 '여왕은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여주를 가리키는 것이 선덕여왕 개인 인지 아니면 여성이라는 성별을 말하는 것인지, 또 다른 이유로 이미 후계자로 지정된 진덕여왕을 말하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있습니다. 어쨌든 상대등 이하 귀족들이 선덕여왕의 정치에 반발을 품은 것은 분명한듯합니다. 아무튼 보통 반란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반란의 주동자가 여느 귀족이 아니라 화백회의 수장인 상대등이었고 왕성을 둔 공방전이 10일 이상 지속된 가운데 선덕여왕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실제로 반란을 일으킨 비담에 대한 처벌은 선덕여왕이 아닌 진덕여왕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그 달 17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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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을 드라마로 볼 때는 어릴 때 왕위에 올랐는 줄 알았었는데, 그렇지가 않으며, 비담의 사랑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었네요. 역시나 역사 드라마는 역사를 알고 봐야 될 것 같습니다.